120318 거금도 적대봉
1.산행일자 : 2012. 3. 18.(일요일)
마당목재(1:49)→암릉(2:27)→535봉(2:37)→돌탑(3:21)→오천리(3:48)
3.산행시간 : 11시02분 →15시48분(총 4시 46분간: 휴식 & 사진촬영시간포함)
4.거금도 적대봉 593M
정상에 서면 바다건너 북쪽으로 고흥반도 천등산과 마복산, 서쪽으로 천관산과 마주본다. 또한 서쪽은 완도, 남쪽으로 거문도, 동쪽으로 여수 일원의 바다와 섬들이 올망졸망 한눈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날씨가 좋으면 멀리 제주도가 바라보인다할 정도로 전망이 좋다.
이러한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적대봉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조선시대 왜적의 침입 등 비상사태를 전달해 주던 봉수대는 둘레 약 34m, 직경 약 7m의 규모다. 적대봉 기슭은 또한 조선 때 목장성(牧場城)이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소록도, 절제도, 시산도, 나로도와 함께 도양목장에 속한 속장의 하나였던 거금도는 적대봉을 중심으로 30리 길이의 성을 쌓아 말 116마리를 키웠던 세납(稅納)목장으로 전한다.
거금도의 남북을 종단하여 석정리와 어전리를 잇는 임도 곳곳에 목장성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고흥 절이도 목장성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206호로 거금도의 어전리와 석정리 일대에 위치하는데, 절이도(折爾島)는 거금도의 조선시대 지명이다. 이 성은 적대봉(592.2m)과 용두봉(418.6m)의 중간 계곡을 형성하는 부분과 두 봉우리가 연결되는 능선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을 중간으로 나눈 남북방향으로 축성되어 있다. 성은 완만한 구릉이 형성되어 있는 부분의 서쪽 사면 끝자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해안선까지 이어진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 세조 12년(1466) 전라도 점마별감 박식의 주청에 의하여 말을 기르기 위해서 절이도 가까이에 있는 선군(船軍)을 동원하여 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축성 당시 절이도 목장성에는 물과 풀이 모두 풍족하여 약 800여필의 말을 기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였으며, 실제로 성종1년(1470)에는 364필의 말을 방목하고 있는 등 절이도 목장은 조선 전기에 중요한 목장 가운데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성은 중간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축조된 차단성 즉 장성(長城)이며,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섬 북쪽 유적이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제외하고도 4,652m에 이른다. 너비는 하부 3.2m, 상부는 1.4m이다.
적대봉 주변의 해안 경관도 뛰어나 섬의 동쪽 오천리는 해안선을 따라 조약돌이 널려있는 등 독특한 풍광을 보여준다. 또한, 섬의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익금해수욕장은 수심 2∼3m 속의 해산물이 보일정도로 물이 맑을 뿐 아니라 울창한 방풍림을 배경으로 길게 뻗은 은빛 백사장은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다. 산 아래를 흐르는 물만내는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 받고 있다.
우리나라 10번째 큰 섬인 거금도는 고흥반도 도양읍에서 남쪽으로 2.3km 떨어진 해상에 있으며, 소록도 바로 아래 위치한 섬이다. 조선시대에는 도양목장에 속한 마목장의 하나로 절리도라 하였다. 그후 강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897년 돌산군 금산면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고흥군 금산면이 되었다. 큰 금맥이 있어 거억금도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최고점은 적대봉이며, 400m 내외의 산지가 많으나 서쪽과 북쪽은 경사가 완만한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5.산행인원 : 나홀로- 가원6.산행지도
7.산행사진
금산정사
봄철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안부
전망바위에서
갈림길에서 중식을 하고
가야할 능선
오천리방향
석정리 방향
마당목재가는 길
거금대교 방향
마당목재에서 본 적대봉
가야할 암릉과 기차바위능선
금장과 임금해수욕장
암릉이 보이고
암릉구간
암릉구간을 지나
암릉과 적대봉
기차바위
기차바위 능선
하산장소인 오천리
돌탑
오천리
소록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