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여행/2012 산행 & 여행

121110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2

만사형통 33 2012. 11. 17. 14:45

 1. 일자 : 2012. 11. 5 ~ 10.(5박6일)

 2. 코스 & 시간
   대구 ~ 인천 ~ 모스크바 ~ 상트 페테르부르크 ~ 모스코바 ~ 인천 ~ 대구

 3. 상트 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 미술관

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라는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 예술품을 골고루 소장한 예르미타시는 바로크 스타일의 기품있는 궁전으로 제정 러시아 황제의 거처였던 겨울 궁전과 네 개의 건물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이 궁전은 원래 이처럼 방대하지 않았지만 표트르 대제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은 후 러시아 황실과 귀족들의 피비린내 나는 당파 싸움 끝에 제위에 오른 표트르 대제의 딸 옐리자베타가 오늘날의 겨울 궁전을 건설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예카테리나 대제 때에 문화의 황금기를 맞는다. 그녀는 밖으로 실내 정원이 나 있는 ‘시계의 방’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때 그녀는 겨울 궁전을 프랑스어로 ‘예르미타시’(은둔지, 인적이 없는 방)라고 즐겨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예르미타시 명칭의 유래이다.

1764~1787년 예카테리나 대제는 궁전 옆에 ‘소(小)예르미타시’와 ‘구(舊)예르미타시’를 건설하고, 겨울 운하를 따라 그것을 연결해 라파엘 회랑을, 그리고 1783~1786년에 예르미타시 극장을 만든다. 1799~1851년 니콜라이 황제가 화랑을 하나 추가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신(新)예르미타시이다.

예르미타시가 출현한 1764년 당시 베를린의 네고니안트라는 갑부가 부채 대신 자기의 미술 소장품 225점을 러시아로 가져왔다. 일찍이 스몰니에 최초의 러시아 여성 학교를 세울 정도로 계몽주의에 심취했던 예카테리나 대제는 서유럽의 고품격 삶의 양식에 비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러시아 귀족들의 생활 문화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등의 부유한 귀족들과 자본가들은 예술 작품들을 수집하여 개인 화랑에 소장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는 개인 화랑은커녕 박물관조차 전혀 없었다. 이에 예카테리나 대제는 황제인 자신부터 화랑을 열기로 마음먹고 다양한 소장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그림들을 전시할 곳이 없어 러시아 최초의 박물관인 쿤스카메라에 임시로 보관했다. 그 후 예르미타시에 미술관이 설립되면서 카벤첼레 공작(1768), 브를리 남작(1769), 크로자 남작(1772), 월 폴 총리(1779), 보뎅(1781), 나폴레옹의 황후 조제핀(1814) 등의 값진 소장품들을 구입했다. 그로 인해 예르미타시는 예카테리나 대제 때 이미 2,000여 점의 예술작품이 소장된 일류 화랑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예르미타시는 니콜라이 1세의 무지로 1,000점이 넘는 작품들이 경매에 나오게 되는가 하면, 사회주의 혁명 때는 화랑이 아닌 임시정부 회의장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수도가 모스크바로 옮겨지면서 모스크바 국립표현박물관에 많은 예술품들이 옮겨가는 등의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1922년부터 국립 예르미타시 박물관으로 명명된 이곳은 현재 1,020여 개의 방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루빈슨, 피카소, 고갱, 고흐, 르느와르 등의 명화가 전시되어 있고, 이탈리아 등지에서 들여온 조각품들과 이집트의 미라부터 현대의 병기에 이르는 고고학적 유물, 화폐와 메달, 장신구, 의상 등 300만 점의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고[1] 지붕 위에는 176개의 조각상이 있다. 가장 볼 만한 것은 서구 미술의 전시품으로 러시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터키, 인도, 중국, 비잔틴, 일본 등 세계의 고대 유물과 예술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고, 고대 러시아 문화와 스키타이 문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또 제정시대의 보석과 왕관 등도 지하 보물실에 전시되어 있다.

 

 

 

 

 

 

 

 

 

 

 

 

 

 

 

 

 

 

※ 피의 성당

피흘리신 구세주 교회 (러시아어: Храм Спаса на Крови, 영어: Church of Our Savior on Spilled Blood)의 공식 명칭은 그리스도 부활 성당(러시아어: Собор Воскресения Христова, 영어: Cathedral of the Resurrection of Christ)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성당으로 관광 명소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모자이크 프레스코로 장식된 이 교회는 알렉산더 2세 암살기도가 있었던 바로 그곳에 1883∼1907년에 걸쳐 세워져서 일명‘피의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피의 사원에서 '피'는 1881년 이곳에서 암살당한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피를 가리킨다. 교회의 내부는 27년간의 복구 끝에(1907년 첫개관 이후로 90년 후) 공개되었으며, 현란한 모자이크 장식이 아름답다.

 

※ 예카테리나 궁전

예카테리나 궁전(러시아어: Екатерининский дворец)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교외의 피서지 차르스코예 셀로(푸시킨 시)에 위치한 제정 러시아 시절의 궁전이다. 18세기 러시아 건축예술의 산물이며, 궁전의 명칭은 표트르 대제황후이며 제2대 러시아 황제이기도 한 예카테리나 1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1717년 예카테리나 1세는 독일의 건축가 요한 프리드리히 Braunstein에게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여름 궁전을 지을 것을 명령하였으며, 1743년 안나 치세에 완성되었다. 그 후, 1756년 5월 옐리자베타의 명령에 따라 건축가 B.F.라스트렐리의 감독 아래 옛 구조물을 철거하고 대규모적인 규모로 훨씬 웅장하고 화려한 로코코 양식으로 개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