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여행/2015 산행 & 여행

151017 환성산

만사형통 33 2015. 10. 17. 21:40

1.산행일자 : 2015. 10. 17(토요일)

2.산행코스 : 일주문~환성사~성전암 입구~성전암~무학산 갈림길(능선 합류)~조망 바위~삼거리(가팔환초 종주길)~안부 삼거리~조망 바위~헬기장~환성산 정상~송림능선~조망바위~임도~극락교

3.산행시간 : 10시00분 ~ 14시50분(총 4시50분간: 중식 & 사진촬영시간포함)

4.산행인원 : 응서랑

5.산행지도

6. 환성산 環城山·807.2m

  • 진흙 속의 보석이랄까. 등잔 밑의 어둠이랄까. 경산 환성산(環城山·807.2m)은 숨은 보석 같은 산이다. 인근 팔공산의 명성 아래에 숨어 조용하게 산행을 즐기는 알짜배기 산꾼들만 찾던 산. 최근 유행이 된 종주산행 때문에 '가팔환초(가산산성~팔공산~환성산~초례봉)로 이어지는 40㎞ 종주 산행'의 주능선으로 부각되자 부쩍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대구나 경산 어느 쪽에서 올라도 쉽게 능선에 도달할 수 있으며 주변 조망이 좋은 능선길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시야가 탁 트이는 겨울철 산행지로 제격이다. 이번에는 경북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에 있는 환성사를 기점과 종점으로 하는 원점회귀 산행을 다녀왔다. (부산일보)
    7. 사진

      환성사(環城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835년(흥덕왕 10)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고, 고려 말에 불타버린 것을 그 뒤 다시 중창하였으며, 1635년(인조 13)신감대사(神鑑大師)가 중건하였고, 1897년(광무 1)에 긍월대사(亘月大師)가 중창하였다. 1973년 대웅전을 해제 보수하였고, 1982년에 명부전을, 1995년에 요사인 감로당(甘露堂)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冥府殿)·심검당(尋劒堂)·성전암(聖殿庵)·수월관(水月觀)·산령각·천태각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보물 제56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고려 말 조선 초의 건축으로 추정된다. 약 1.6m 높이의 석단(石壇) 위에 정면이 5칸, 측면이 4칸이며, 1974년에 복원되었다.

    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되어 있는 심검당은 대웅전 옆에 있는 강당(講堂) 건물로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의 맞배지붕이며, 근래에 양와(洋瓦)로 새로이 단장하였다.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을 띤 심검당은 은해사 영산전(靈山殿)보다 먼저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1976년에 해체 중수되었다.

    그 밖에 대웅전 앞에 고려시대에 조성한 석탑과, 입구에 석주(石柱) 4개가 서있다. 석탑은 일명 연화탑이라고도 부르는데, 상층 기단부 갑석과 초층 탑신 사이에 별석(別石)으로 된 매우 큰 괴임돌을 받친 매우 드문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석주는 예전에 있었던 일주문(一柱門)의 기둥이다.『화성지(花城誌)』에 의하면 이 절이 조선시대에 임고서원에 속하여 공물을 드렸는데, 숙종 때 박서봉(朴瑞鳳)과 황윤중(黃允中)이 여러 번 상소하여 하양향교(河陽鄕校)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보물 제562호 (1971년 12월 23일)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건물. 보물 제562호. 높이 약 1.6m의 석단 위에 위치하고 있다. 석단 중심부에는 10단의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길이와 너비가 맞먹는 평면을 이룬 동시에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단주(丹柱)는 크지 않기 때문에 폭넓은 정위(定位)에 매우 안정된 비례를 이루고 있다.

    어간·협간의 칸살이 모두 같고, 4우주(隅柱)상에는 현저한 귀솟음이 있고, 주고(柱高)와 간장(間長)에 비하여 다포를 가진 처마의 높이가 큰 편이며, 또한 길어서 하반부의 중량이 최대한에 이르러 전체의 형식이 장중(壯重)·광안(廣安)한 경향을 띠었다.

    문은 정면 5칸이 모두 井자살 분합으로 개구되었고, 측면은 첫칸에만 좌우대칭으로 외짝 井자살문이 있었으나 우측 것은 문틀을 놓아둔 채 토벽을 쳐서 폐문하였다. 뒤쪽은 어간과 좌우 끝칸에 정자살 분합과 판장(板墻 : 널판장) 분합을 달고 격간(隔間) 2칸은 토벽을 하였다.

    내부바닥은 우물마루이고 후방에서 1칸 건너 3칸통의 불단을 안치하였고, 4개의 고주가 일자로 후불벽(後佛壁)을 이루고 있다. 전면 井자살 문호(門戶)의 아랫도리 공판(貢板)은 모두 옆으로 가운데를 띠로 막아 2단으로 하였다.

    기둥머리에 평방·창방이 있고, 주심(柱心)·주두(柱頭) 위에 각 1개, 각 주간(柱間)에 1조(組)씩의 공포를 짜올리되 외삼출목(外三出目) 5포(包), 내사출목(內四出目) 7포로 하였다.

    첨차 마구리는 비스듬히 잘랐고 쇠서는 방두앙서[方頭仰舌]인데 이 쇠서의 곡률(曲率)은 조선 전기의 많은 직설(直舌)에 가까운 것들에 비하여 현저하다. 포간(包間)은 벽체를 하고 연화문(蓮花文)·보상화문(寶相華文)을 별화(別畫)로 장식하였다.

    내주(內周) 제4출목상에서 대들보 위로 충량(衝樑)을 걸고 네 귀퉁이에는 제4·5교두에서 살미 충량을 내어 끝 충량 옆에 부착하여 대들보 위에 걸었다. 대동상(大桐上)에는 소동자주(小童子柱)를 놓고 주두를 놓아 이중첨차교두 십자교형포(十字交形包)를 따로 만들어 그 위에 중량(中樑)을 놓았다.

    단청은 금모로(錦毛老)·별화 단청이며 반자초(草)는 6화형연화문(六花形蓮花文)이고 6엽(六葉) 안에는 범자(梵字)를 전서(全書)하였다. 대들보의 별화는 좌청룡 우백호로 하였다. 대체로, 건물의 구조나 단청의 문채(文彩)가 고격(古格)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악착보살님을 보셨나요?

    환성사에서 악착보살님을 처음 뵈었네요.

    악착보살은 경전에 나오는 보살의 이름은 아님.

  • 예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느 악착스러운 보살에게 붙여진 이름.

    기필코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에 올라타려고 악착같이 밧줄을 붙들고 매달려 있는 모습.

    예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느 악착스러운 보살에게 붙여진 이름.

    기필코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에 올라타려고 악착같이 밧줄을 붙들고 매달려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