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세계로 접근…경건한 마음 갖게 해 |
참배자의 엄숙함 독려하는 쌍계사의 금강문 유명
천왕문은 수미산 중턱 ‘청정한 경지의 관문’ 의미
불이문 해탈문 등은 門 이름에 상징적 의미 내포
규모가 큰 사찰에서 일주문과 중심 불전을 잇는 축선 상에 몇 개의 문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들 문은 사찰 초입의 일주문과 달리 이미 신성한 종교적 공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문이다. 배치 순서는 금강문,천왕문과 불이문 순으로 되어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들 문은 사찰 공간의 질서화를 통해 참배자들로 하여금 부처님 세계로의 접근을 실감케 하고, 더불어 경건한 마음 자세를 갖추도록 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 어떤 영역을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공간으로 상징화 하는 수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금줄과 같이 줄로 특정영역 주변을 둘러쳐서 그 내부 공간을 신성화(神聖化) 하는 방법이 있고, 솟대의 경우처럼 그 주변에 붉은 황토 선을 그어 내연을 신성화 하는 방법도 있다. 금강문 역시 문 안쪽 공간을 신성화.청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문이라 할 수 있다.
금강문은 사찰의 중문(中門)에 해당한다. 대문격인 일주문에서 금강문에 이르는 지역은 비교적 자유스러운 공간이지만 금강문 이후부터는 그렇지 않다. 민가의 경우를 보면, 혼례 절차 중 친영(親迎 : 신랑이 신부 집에 가 신부를 맞이하는 절차) 때 신랑이 신부를 맞이해 가는 장소가 대청이 아니라 중문 밖이다. 이것은 중문 안쪽이 배타적인 성격이 강한 공간임을 말해 주는 사례이다.
사찰의 금강문 안쪽 공간 역시 배타적 성격이 강하다. 이 영역은 실제로 불국 세계가 펼쳐져 있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참배자가 일정한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진입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관념되어 있다.
참배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이란 삿됨이 없는 마음과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이다. 그런 자세를 갖추도록 조장하고 독려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금강문의 금강역사이다. 원래 금강역사는 인도의 문신(門神)을 불교에서 수용한 신으로, 이 두 문신의 이름은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으로 불린다. 이들은 항상 문 양쪽에 서서 위협적 자세로 사귀(邪鬼)의 진입을 막음과 동시에 문을 통과하는 참배자로 하여금 사심(邪心)을 버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성역에 진입하도록 통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유적으로는 하동 쌍계사 금강문(시도유형문화재 제127호), 완주 송광사 금강문(시도유형문화재 제174호) 등이 유명하다.
금강문 다음 단계에서 만나는 문이 천왕문이다. 금강문이 문지기 역할을 하는 문신을 봉안한 문이라고 하면, 천왕문은 불교의 우주관에 바탕을 둔 문이다. 천왕문에 봉안된 사천왕은 불교 우주관에서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존재들이다. 수미산의 중턱 사방을 지키며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도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신적 존재인 것이다.
고대 인도의 신이었던 그들은 불교에 수용되면서부터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천왕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천왕문 안에는 동방 지국천이 검을, 북방 다문천이 비파를, 서방 광목천이 탑을, 남방 증장천이 용을 쥐고 있는 무서운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천왕상을 봉안한 천왕문은 사찰 수호의 의미도 가지고 있으나, 불국 세계 진입과정 중에 수미산 중턱의 청정한 경지에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천왕문 유적을 살펴보면, 통도사 천왕문(시도유형문화재 제250호)은 고려시대 창건이후 수차례 수리를 거친 후 조선 후기에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문 내부에 사천왕이 모셔져 있는데, 분노형으로 되어 있으나 괴기스럽거나 표독하지는 않은 것이 한국인의 심성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밖에 쌍계사천왕문(시도유형문화재 제126호)도 볼만한데, 이 문은 임진왜란 이후에 지어진 건물로, 가운데 칸은 개방해서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양 옆 칸은 벽으로 막은 후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는데, 사천왕상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이밖에 장성 백양사사천왕문(시도유형문화재 제44호), 법주사사천왕문(시도유형문화재 제46호) 등이 있다.
![]() 사찰에는 금강역사나 사천왕 등과 같은 신적 존재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된 문외에 문 이름 자체에 상징적 의미가 부여된 문이 있다. 예컨대 불이문(不二門), 해탈문, 회전문(廻轉門) 등이 그것이다.
불이문은 일주문에서 가장 먼 쪽, 다시 말하자면 중심 법당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문이다. 이 위치는 일상의 평범한 생활공간에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자 부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해당된다. 불이문이 가진 의미는 심오하다. ‘不二’는 ‘둘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직역되지만 더 깊은 뜻을 새기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라는 말이 된다. 이 의미는 ‘일즉이 이즉일(一卽二二卽一)’, 또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不二’는 불법 진리를 드러내는 말이고, 불이문은 그것을 상징하는 문이니, 이 문 안으로 들어선다는 것은 불법 진리 속으로 직접 들어간다는 의미와 통한다.
불이문 유적 중 통도사불이문(시도유형문화재 제252호)이 유명하다. 이 문은 고려시대에 창건된 후 수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견실하고 짜임새가 뛰어난 건물이다. 문에 걸려있는 ‘源宗第一大伽藍(원종제일대가람)’이라고 쓴 현판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직접 쓴 것이라고 전해진다.
해탈문은 ‘解脫門’이라고 쓴 현판을 달고 있어서 해탈문이다. 해탈이란 간단히 말해 업과 연기(緣起)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해탈문은 대부분 완전한 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해탈의 경지로 진입하는 관문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해탈문 유적 중에서 건축적으로 중요시 되고 있는 것이 영암 도갑사 입구의 해탈문(국보 제50호)이다. 이 문은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되어 있다. 문 앞쪽 위에 ‘月出山道岬寺(월출산도갑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반대편에 해탈문 현판이 걸려 있다. 공주 마곡사에도 해탈문이라는 이름의 문이 있다.
![]() 드물게 회전문(廻轉門)이라는 문이 있다. 청평사 회전문(보물 제164호)이 그 예인데, 여기서 ‘廻轉’이란 ‘윤회전생(輪廻轉生)’의 줄임말로 윤회전생을 깨우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윤회의 업과 연기(緣起)의 굴레를 벗어나면 다시는 전생(轉生)하지 않으므로 생사의 윤회(輪廻)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청평사 회전문 안쪽은 사천왕상 등을 봉안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윗부분에는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만든 홍살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런 점들이 조선 중엽 건축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밖에 사찰 경내에는 ‘모든 것이 마음의 뜻과 같이 된다’는 뜻의 여의문(如意門), 거짓이 아닌 진실이란 뜻과 변천하지 않는 여상(如常)하다는 뜻의 진여문(眞如門), 법의 참다운 이치에 계합한 최상의 지혜를 뜻하는 반야문(般若門)이 있는가 하면, 천하가 태평할 때 나타난다는 상상의 서조(瑞鳥)인 봉황 등 새를 문 이름으로 삼은 예도 있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90호/ 12월27일자] 2006-12-23 오전 11:10:12 / 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