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환희 가득한 ‘차안의 정토’ |
극락전은 아미타여래를 본존으로 모시는 불전으로, 대적광전, 대웅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사찰의 중요한 법당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때로 ‘보(寶)’자를 더해 격을 높여 극락보전이라 하기도 하고, 아미타여래의 명호를 직접 사용하여 미타전이라 부르기도 하며, 아미타여래의 권능과 자증(自證)의 내용을 새겨 무량수전이라 이름하기도 한다. 사찰에 따라서는 극락전 주변에 안양교(安養橋), 안양루 등의 건축물들을 배치하여 사찰 전역이 극락세계임을 강조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극락전의 주존불인 아미타여래는 삼신불, 즉 법신, 보신(報身), 화신(化身) 중 보신에 해당하는 부처님이다. 아미타불은 법장보살이었을 때 세운 48원(願)을 성취함으로써 부처가 되었고 극락의 세계를 이룩하였다. 그래서 아미타여래가 임하고 있는 극락전은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전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미타여래 본존으로 모셔 극락세계 염원 대적광전.대웅전과 더불어 사찰의 주법당 극락보전.미타전.무량수전으로 불리기도 극락이란 오직 즐거움만이 있는 곳이며, 그 즐거움은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에 의해 성취된 깨달음의 즐거움이다. 〈아미타경〉에 의하면, 극락세계는 서방으로 십만억불토(十萬億佛土)를 지나서 있는 곳이라 설하고 있다. 그러나 선정불이(禪淨不二)의 전통, 즉 염불과 선이 둘이 아니라고 보는 사상은 선정에 들어 아미타여래를 염하면 그곳이 곧 극락정토라는 믿음을 낳았고, 그러한 종교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극락전은 곧 극락정토로 관념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극락전에 봉안된 아미타불은 아미타구품인 중에서 한 가지를 취하거나 묘관찰인(妙觀察印)을 취하고 있으며, 좌우의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두고 있다. 아미타불에겐 자비문과 지혜문이 있는데, 관세음보살은 자비문을 표하고, 대세지보살은 지혜문을 나타낸다. 대자대비를 근본 서원으로 하는 관세음보살은 세상을 교화함에 있어서는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대세지보살은 이 보살의 지혜 광명이 모든 중생에게 비치어 3도(途)를 여의게 하고 위없는 힘을 얻게 하므로 대세지라 하며, 또 발을 디디면 삼천 세계와 마군의 궁전이 진동하므로 대세지라 한다. 형상은 정수리에 보배병을 얹고 아미타불의 바른 쪽에 있다. 지장보살 또한 대세지보살의 위치인 오른쪽에서 본존을 협시하는 형태로 봉안된다. 현존하는 극락전 건물 중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것을 살펴보면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9호),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제13호), 무량사 극락전(보물 제356호) 등이 있다. 먼저 봉정사 극락전을 살펴보면, 이 건축은 축성 연대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건축 양식 등 여러가지 여건으로 봐서 건축 시기를 고려시대로 추정되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이다. 3칸으로 된 전면 중앙에 판자로 된 문이 나 있고, 그 좌우 칸에는 살창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어느 시대 어느 사찰의 불전에서도 볼 수 없는 이 건물만의 특색이다. 공포의 기둥머리와 소로의 굽의 형태, 마루도리를 받치는 복화반 모양의 대공(臺工) 형태가 삼국시대의 잔영을 보여 주고 있어 이 또한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건물 내부 안쪽 중앙에 마련된 불단 위에 아미타여래가 모셔져 있고, 그 위쪽 천장에 정교하게 만든 닫집이 설치되어 있다. 닫집은 보통 천장에 매달아 설치하지만 봉정사 극락전의 경우는 불단 위에 네 기둥을 세워 지붕을 떠받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이채롭다. 봉정사 극락전은 강한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날에 더욱 신비로워진다. 마당에 반사된 순한 빛이 옅은 황토색 벽에 비치면 극락전 건물은 환상적인 자태로 변하고, 살창 사이로 스며든 순광(順光)은 실내를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이게 한다. 이것은 우연히 발견되는 현상이 아니라 살창을 내고 옅은 황토색으로 외벽을 마감할 때부터 계획된 것이 분명한 것처럼 느껴진다. 말쑥하고 단정한 장대석 축대 위에선 우아하면서도 세련미 넘치는 봉정사 극락전 건물은 한국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를 실연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사진설명:강진 무위사극락보전.> 현존 극락전 건물 중 중요한 또 하나의 건물은 전남 강진에 있는 무위사 극락전이다. 이 건물은 조선 전기 건물로서, 자연석을 쌓아 네모나게 조성한 석단 위에 세워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를 가진 이 건물은 기둥은 배흘림기둥이고 가구양식은 기둥머리에만 공포를 짜 올린 주심포 양식을 갖추고 있다. 무위사 극락전의 아름다움은 단정하면서도 소박한 건축 의장(意匠)에 있다. 건물 앞면에는 세 칸 모두 사분각의 빗살문을 달고 좌우 측면에는 앞 칸에 정자살문이 있고, 뒤쪽에는 중앙 칸에 판자문 출입구가 있고, 그 좌우에는 창문이 달려 있다. 문살은 장식성이 강한 속성을 가지고 있으나 이 건물의 문살이 현란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단지 단청이 벗겨진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이것을 만든 소목장의 심성이 소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건물에서 또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내부 천장이다. 무위사 극락전은 내부에 서까래가 노출되어 있는 연등천장식 건물인데, 불좌 위 중앙 칸 부분에 두 평 정도의 정자(井字) 천장을 가설하였다. 이 부분에 평면 천장을 특별히 마련한 의도는 이곳에 하늘 꽃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다. 정자형으로 구획된 공간마다 꽃 한 송이씩이 그려져 있는데, 이 꽃들은 허공에 머물고 있는 꽃으로, 그것은 우화(雨花)의 상서를 상징하고 있다. 무위사 극락전은 벽화로도 유명하다. 불단에는 아미타삼존이 모셔져 있고, 그 뒷벽과 좌우 벽에는 불.보살상과 천인상 등의 벽화가 있다. 관음보살이 그를 예배하는 선재동자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그린 ‘수월관음도’와 아미타여래가 중생들을 극락에 인접하러 내려오는 ‘아미타내영도’, 그리고 후불 벽화인 ‘아미타삼존도’가 유명하다. 지금은 벽체 그대로 뜯어내어져 별도로 마련한 보존각에 보관되어 있지만, 조선 초기 불화가 드문 상황에서 이들 불화가 가지고 있는 회화사적 가치는 매우 크다. <사진설명:영주 부석사무량수전 편액과 처마.> 아미타여래를 모신 불전을 말할 때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빼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교학을 펴기 위해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적인 무량수전 앞 석등, 조사당, 소조여래좌상, 당간지주 등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무량수전은 1376년(우왕 2)에 재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조사당이 1377년에 재건된 것과 비교해 볼 때 조사당보다 100년 내지 150년은 더 앞서는 건물로 추정되고 있다. 무량수전은 기둥 위에만 공포를 짜 올린 주심포 건물로 네 귀는 8각의 활주로 받쳐져 있으며, 건물 내부를 보면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기둥에서부터 가구 부재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좌우 균형을 이루도록 짜여 있어 전체적으로 안정된 자태와 경쾌하고 우미한 건축미를 자랑한다. 건물 앞의 탁 트인 전망과 그것을 바라보기 위해 세운 안양루에 의해 극락전은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건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법당 내에 안치된 아미타여래상은 정문의 왼쪽, 즉 서쪽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는 자세로 봉안되어 있다. 이것은 불상을 법당 정면에서 바로 보이는 위치에 봉안하는 일반적인 불상 봉안 방식과 다른 것으로, 그것은 아미타여래가 서방의 극락정토를 주재하는 부처님이기 때문이라고 믿어진다. <사진설명: 부여 무량사극락전.> 마지막으로 살펴 볼 것은 부여의 무량사 극락전이다. 무량사 극락전은 우리나라 사찰 건물 중 몇 안 되는 중층 건물 가운데 하나로서,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존하는 중층 불전으로는 김제 금산사 미륵전, 보은 법주사 팔상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 공주 마곡사 대웅전 등이 있으나. 무량사 극락전만큼 전정(前庭)의 석탑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은 드물다. 오층탑이 가진 강한 다층의 속성과 적당한 괴량감, 그리고 적정한 체감율은 극락전이 가진 중층의 속성과 어울려 극락전과 오층탑이 하나의 공간 속에 융합되어 있는 느낌이다. 건물 정면에는 기둥 사이에 모두 살문을 달았는데 가운데 칸에 4짝, 그 옆의 협간에는 2짝, 그 옆의 툇간에는 1짝을 달았다. 또, 양측면의 앞쪽 1칸과 뒷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달았는데, 적정한 규모와 비례가 건물의 품위를 한층 높여 주고 있다. 불전 내부 중앙부 뒤쪽에 큰 불단이 마련되어 있고, 그 위에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왼쪽에 관세음보살,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이 본존을 협시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아미타불삼존 봉안형식을 따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극락전 건물 외에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보물 제790호), 완주 화암사 극락전(보물 제663호), 청도 대적사 극락전(보물 제836호) 등의 불전도 눈여겨 볼만하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