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전각

불전-약사전

만사형통 33 2007. 7. 18. 08:51

중생의 아픔 씻어주는 ‘醫王刹土’

약사전은 약사여래를 모시는 전각이다. 약사전을 유리광전이라고도 하는 것은 동방정유리광세계의 교주이기 때문이고, 약사전의 위치를 동쪽에 두는 예가 많은 것은 이 여래의 주처가 동방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을 만월보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 여래가 상주하는 곳이 동방만월세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약사전은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등을 모신 전각보다 규모나 숫자 면에서 열세에 놓여 있으나 약사여래에 대한 민간인들의 신앙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사진설명: 순천 송고아사 약사전 내부(문화재청 사진)>

약사여래는 과거세에 약왕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해 열두 가지 원을 세웠다. 12대원(大願) 중에는 지혜의 빛으로 가없는 세계를 비추고, 높은 위덕으로 중생을 깨닫게 한다는 등의 형이상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으나, 이보다는 굶주린 자를 배부르게 하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준다든지, 온갖 병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심신의 안락을 얻게 해주거나, 여인의 몸으로 핍박받는 자를 장부로 태어나게 한다는 등의 구병(救病)이나 현세 복락에 관한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약사여래의 성격 때문에 현세 복락을 희구하는 일반 대중들은 다른 어떤 부처님보다 약사여래를 가까이 하기를 원했고, 그의 권능에 힘입어 복덕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다.

“유리와 같이 맑은 세계에 큰 의왕(醫王)인 부처님이 있으니, 광명이 해와 달보다도 더 밝아서 모든 찰토(刹土)를 비춘다…, 부처님의 자비한 음덕을 힘입으면 이익이 얼마나 크겠는가. 이에 선대의 끼쳐준 법도를 좇아서, 엄숙히 법식을 차리어, 훈훈한 음식을 장만하고 가지가지의 향을 태우나니, 이 훌륭한 인연을 의지하여 곧 잘 보호하여 줌을 입어서, 복이 모이고 빛나서 오래 명을 누리는 기간이 늘어나고, 나라가 안정되어 이미 이룬 사업을 길이 보전하여 지이다.”

이것은 〈약사전행향문(藥師殿行香文〉(〈동문선〉 제114권)의 내용이다. 이와 같은 일반 대중들의 생각과 믿음이 약사전을 사찰의 중요 건축물의 하나로 등장하게 했고, 오늘날까지 약사여래에 대한 신앙이 유지되어 오게 된 배경이 되었다.

약사전 내 불단에 모셔진 약사여래상은 일부 예외도 있으나, 대부분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수인을 갖추고 있는데, 약합은 대의왕불로서의 약사여래의 지혜와 권능을 드러내는 대표적 상징물이다. 경전을 보면 약사여래는 12대원에 대응하는 십이신장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약사전에서는 약사후불탱화 속에서만 그 모습이 나타나고 있을 뿐 별도로 조성된 조각상은 봉안되어 있지 않다.

<사진설명:  순천 송광사 약사전(문화재청 사진)>

현존하는 약사전 건물 중에서 건축사적으로 중요시 되고 있는 것이 창녕 관룡사 약사전(보물 제146호), 강화 전등사 약사전(보물 제179호), 순천 송광사 약사전(보물 제302호), 기림사약사전 등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약사전 건물 중에는 사방이 한 칸에 불과한 소규모의 건물도 섞여 있다는 사실이다. 관룡사 약사전, 송광사 약사전이 바로 그런 예에 속하는 건물이라 할 수 있는데, 둘 다 사방이 한 칸밖에 되지 않는다. 한 칸짜리 건물은 산신, 칠성, 독성 등 신중을 모신 신중전(神衆殿)에서는 흔히 볼 수 있으나, 상단(上壇) 부처님을 한 칸짜리 건물에 모셔 놓은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약사여래의 성격과 약사여래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보편적 관념과 신앙 형태를 이해하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가 있다.

왼손에 약합 든 수인의 약사여래 모신 전각

‘유리광전’이라 부르며 전등사.송광사 유명

신단처럼 한칸 건물 많고 주로 동쪽에 위치

<사진설명: 강화 전등사 약사전>

앞서 말했듯이 약사여래의 12대원 내용이 구병(救病), 현세적 복락, 고난의 해탈 등 기복적인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음으로 인해 현세 복락을 추구하는 민간인들의 큰 호응을 얻은 부처님이다. 일반 대중들의 약사여래에 대한 신앙은 형이상학적 정신세계의 상징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나,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에 대한 신앙의 내용과 달랐다. 다시 말하자면 약사신앙은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견성성불보다는 현세 구복적인 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약사신앙은 산신, 칠성, 독성 등을 대상으로 하는 신중신앙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점이 약사전의 규모나 위치가 신중전(神衆殿)의 경우와 비슷한 형태로 용인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관룡사 약사전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작은 건물이다. 만약 약사전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지 않았다면 위치나 크기로 보아 산신각이나 칠성각쯤으로 여겨질 수 있는 전각이다. 그러나 격자문살로 된 2분합문을 열고 안쪽을 들여다보면 화강암 대좌 위에 앉은 약사여래상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다. 몸 전체가 회칠이 되어 있는 이 불상은 고려시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형태는 이 절의 서쪽 암산 꼭대기의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과 비슷하다. 그러나 눈여겨보면 용선대 불상과 달리 엄숙성이나 긴장감이 떨어져 있어 동네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주고 액운을 물리치고 평안하게 살게 해준다는 마을의 미륵님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건물 내부 3면의 벽에는 민화풍의 사군자 그림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사군자그림 위쪽에는 비슷비슷한 모습의 화불 그림이 일렬횡대로 전개되어 있다. 화조, 사군자 등이 불전 내부 장식용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처럼 모든 벽면을 민화풍 그림으로 채워 넣은 것은 이 약사전의 경우가 유일한 것으로 생각된다. 약사회상도가 아니라 순정적인 민화풍의 그림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관룡사약사전은 엄숙한 신행의 공간이라기보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민간신앙의 현장과 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사진설명: 창녕 관룡사 약사전(문화재청 사진)>

관룡사 약사전과 비슷한 규모를 가진 건물이 순천 송광사약사전이다. 영산전과 나란히 서있는 이 건물 역시 앞면과 옆면이 모두 1칸인 작은 건물이다. 차이가 있다면 관룡사 약사전은 맞배지붕이고, 송광사약사전은 팔작지붕이라는 점이 다르다. 정면에 띠살문 4짝이 달려 있고 우측 벽면에는 띠살로 짠 문이 하나 더 나있다. 사방 한 칸 규모의 작은 건물인 데다 겹처마에 팔작지붕, 거기다 다포 구조까지 갖추고 있어 건물 전체가 공예품 같다. 우물마루 위에 놓인 높직한 불단 위에 비교적 작은 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된 이 약사전에는 오늘도 약사여래의 가피를 받기 위해 찾아 온 우리 이웃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편 강화 전등사 약사전은 관룡사 약사전이나 송광사약사전에 비해 규모가 큰 건물이다. 대웅전 서쪽에 언덕 위에 위치한 약사전은 3단 장대석을 쌓아 마련한 터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지어진 팔작집이다. 주춧돌은 다듬지 않은 커다란 자연석을 사용하였는데, 이 주춧돌에서 과도한 기교나 정해진 틀에 구속되지 않는 우리 조상들의 선천적 대의성(大義性)을 느껴볼 수 있다. 상승 기운으로 반전하는 추녀마루의 곡선, 추녀마루 곡선의 무한한 연장을 적정하게 제어하는 삼각형 합각, 알맞은 기둥 높이와 이에 조화로써 화답하는 처마가 약사전을 하나의 예술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약사전 건물 안쪽 중앙의 불단 위에는 약사여래상이 모셔져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이고, 작은 각 구획마다 화려한 연꽃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천장의 연꽃 장식은 보편화된 불전 장엄 수단으로 우화(雨花)의 상서로움을 나타낸다. 이 건물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장식적 요소는 공포 벽마다 그려진 화불이다. 화불은 수인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형태는 대동소이하다. 2분합의 빗살문은 이 건물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으며, 푸른 계통과 붉은 계통의 색이 조화로운 단청 또한 이 건물의 품위를 높여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상 살펴 본 약사전 건물 외에도 볼만한 것으로 양산 통도사 약사전(시도유형문화재 제197호), 경주 기림사 약사전(문화재자료 제252호)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유리광전이라고 이름을 붙인 불전으로는 당진 영탑사 유리광전, 대구 동화사 유리광전, 통일신라 철불좌상(보물 제667호)으로 유명한 예천 한천사 유리광전 등이 있다. 그리고 만월보전이라 지칭한 전각으로는 평면이 육각형인 남양주 흥국사 만월보전, 그리고 등명낙가사 만월보전 등이 있다.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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