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전각

보살전-관음전

만사형통 33 2007. 7. 19. 09:56

‘자비의 화신’ 관음보살 상주하는 곳

관음보살은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이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즉시 그 음성을 관하고 중생의 근기에 맞는 모습으로 나타나 대자비심을 베푼다는 보살이다. 관음보살은 아미타여래의 좌협시 보살로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별도로 마련한 건물에 단독으로 모시기도 한다.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은 지장전과 함께 우리나라 사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보살전으로, 사찰에 따라서 원통전(圓通殿) 또는 보타전((寶陀殿)이라는 편액을 건다.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 내 선재동자상.

불교 의례의 하나인 관음청 거불(擧佛)의 내용을 보면, “나무 원통교주(圓通敎主) 관세음보살”이라고 관음보살을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 ‘원통’이란 이근원통(耳根圓通)을 줄여 한 말이다. 이근원통의 이근은 소리를 듣는 귀를 말하는 것이고, 원통은 중생이 내는 무슨 소리든지 다 들어 주고 문제와 고통을 막힘없이 해결해 준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나무 원통회상(圓通會上) 불보살”이란 대목도 있는데, 원통회상은 관세음보살이 속한 모든 권속들이 모인 장소라는 뜻이다. 이로써 관음전을 원통전이라고 한 이유와, 관음전이 관음보살 권속의 모임장소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도 알게 된다.

한편, 관음전을 보타전이라고도 하는 것은 관음보살의 주처(住處)와 관련되어 있다. 관음보살의 주처는 인도 남해에 있다는 보타락카(Potalaka)산이다. 보달락가, 포달락가, 포다라, 보타락, 포타, 보타 등 여러 가지 발음의 한자로 표기되는데, 티베트 라싸의 유명한 포탈라궁, 홍련암을 거느린 낙산사, 중국의 관음성지 보타산 이름도 모두 ‘보타락카’를 인용한 것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는 보타락카산 정경을 묘사하되, “바다 위에 산이 있어 많은 성현이 계시니, 온갖 보배로 만들어져 극히 청정한 곳이네. 꽃피고 과일이 열린 나무들 두루 우거지고, 흐르는 개울과 연못 모두 갖추었구나. 용맹한 장부이신 관자재보살, 중생을 위해 이 산에 머물고 계시네…”라고 하였다.

고려 후기의 문신인 이색의 〈관음전 제영(題詠)〉(〈신증동국여지승람〉 제41권 황해도 봉산군 제영 조)에서는 보타산과 관음전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내가 들으니, 보타산이 멀리 남해 가운데에 있다고 하네. 노는 사람은 짚이라도 믿고 놀란 물결은 먼 공중을 헤친다네. 멀리 남해의 험한 곳을 건너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여기에 이 청련궁(靑蓮宮)이 있구나. 절하면서 수월(水月, 관음)을 상상하니 황홀히 원통(圓通))에 노는 것 같구나. 병 속에 한 가지 버들 있으니 가는 곳마다 모두 봄바람이네.”

보타산 정경을 떠올려 지은 보타전(1993년 준공)이 양양 낙산사 경내에 있었으나 아깝게도 2005년 4월에 일어난 산불로 소실되고 말았다. 요즘 지은 건물로는 서울 종로 감로암의 보타전이 있고, 암자로는 양산 통도사 암자인 보타암(1935년 증축)이 있다.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

관음보살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 신앙했던 보살이다. 숭유배불을 정치이념으로 삼고 출발한 조선시대에도 일반 대중은 물론 왕실에서도 관음전을 능(陵) 가까이 세울 정도로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이 극진했다. 조선 태조 강헌대왕과 왕비 신의왕후 한씨의 영가를 천도하는 의식인 개경사(경기 양주 검암산 남쪽에 있던 절로서, 건원릉의 재궁(齋宮)) 관음전 법회의 내용을 담은 〈개경사 관음전 행법화법석소(開慶寺觀音殿行法華法席疏)〉(동문선 제113권)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부처님은 시방과 삼세에 가득하나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가장 신통하다. …일찍이 〈법화경〉 2부를 금자(金字)로 썼고, 또 관음전 한 채를 능(陵) 옆에 지었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봉안하며, 법화경을 모셔 두고, 좋은 향을 태워 예배하며, 청정한 스님들을 모아 경을 선양합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과거의 업장을 모두 없애고 근본의 진리를 증득하여서 극락당 가운데 미륵보살의 인도를 받고, 보리수 아래에 마야부인과 함께 소요하소서. 후세의 자손을 무궁토록 도와주시어 큰 복이 다함이 없도록 뻗어나가게 하여 주시며, 모든 보고 들음이 미치는 바에 모두 이익을 두루 입어지이다.”

대개 아미타여래의 좌협시 보살로 봉안

독자 전각에 원통전.보타전 편액 걸기도

개목사 원통전.통도사 관음전 등 손꼽혀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능 옆에 관음전을 짓고 왕족의 극락왕생과 왕릉의 안전 보존을 기원할 정도로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이 유행하였다. 이러한 관음보살에 대한 신앙심이 사찰 속에 관음전을 건립하고 유지해 올 수 있었던 배경의 하나로 작용했을 것으로 믿어진다.

현존하는 관음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은 안동 개목사원통전((보물 제242호), 보은 법주사원통보전(보물 제916호), 통도사관음전(시도유형문화재 제251호), 승주 선암사원통전(시도유형문화재 제169호) 등이 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문화재청 사진).

개목사 원통전은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보살전이다. 개목사의 전신은 흥국사로 통일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원통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씩인 맞배지붕의 주심포 양식 건물이다. 기둥은 배흘림이 매우 약한 둥근 기둥으로 전면의 각 기둥 사이는 정자살문을 달았는데 중앙 칸은 4분합, 좌우 협간은 2분합으로 되었으며 후면 북쪽 협간에 1짝의 정자살문을 단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벽으로 처리하였다. 내부와 툇간바닥은 마루를 깔고 내부 중앙 칸 후면에는 조그마한 불단을 마련하여 그 위에 관음보살좌상을 안치하였고, 후불벽에는 석가모니 탱화를 걸어 놓았으며 불상 위로는 간단한 형식의 닫집이 가설되었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보물 제916호)은 임진왜란 이후에 복원된 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통보전은 앞면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중앙에서 4면으로 똑같이 경사가 진 사모지붕의 주심포 양식 건물이다. 건물 안에는 목조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고 그 좌우에 선재동자와 해상용왕이 배치되어 있다. 선재동자는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구도자로, 53선지식을 두루 찾아뵙고, 맨 나중에 보현보살을 만나서 10대원을 듣고, 아미타불 국토에 왕생하였다고 한다. 선재동자의 합장 례를 받고 있는 관음보살은 선재동자가 구도의 길을 떠난 후 스물여덟 번 째 만난 선지식이다. 관음전 건물은 단순하지만 특이한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통도사 관음전(시도유형문화재 제251호)은 통도사의 중로전에 있는 3개의 법당 중 하나로 가장 앞쪽에서 남향하고 있으며 그 뒤로 용화전과 대적광전이 있다. 조선 영조 때 용암대사가 지었고 그 뒤 여러 번 보수를 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이 전각은 팔작지붕의 다포양식을 취하고 있다.

내부 불단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긴 연꽃 줄기를 든 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내벽에는 보타락카산에 계시는 관음보살의 모습과 선재동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비천상, 사자상 등 장식화도 대들보 등에 그려져 있다.

승주 선암사 원통전(시도유형문화재 제169호)은 조선 현종 때에 초창되었고, 숙종 때 호암대사가 고쳐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때 다시 고친 건물이다. 규모는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주심포 양식이다. 특이한 점은 평면 형태가 앞쪽으로 두 개의 기둥을 내어 처마를 길게 끌어 낸 T자형 평면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면에 양쪽으로 쌍여닫이문과 중앙에 4분합문이 있고, 양측 면에는 쌍여닫이문이 하나씩 있다. 지금은 기둥 사이 공간이 모두 벽체로 마감되어 있으나 원래는 안쪽 칸만 벽체가 있었고, 앞쪽 칸은 전면과 양 측면이 개방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형태는 왕릉의 정자각(丁字閣)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전각 내에 봉안되어 있는 관음보살상은 한 때 진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끝으로 봉안된 관음보살상으로 유명한 파계사 원통전은 1977년 6월 봉안된 보살상의 개금불사 때 보살상의 복장(腹藏)에서 영조대왕의 어의(御衣)가 나와 파계사의 중심전각이 되었다. 중심전각인 원통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설선당, 적묵당 그리고 앞에는 진동루 등이 위치하여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선조 때 계관법사가 중건하고, 숙종 때 삼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건축양식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가구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은 후 둥근기둥을 올렸다.

법당 내부의 불단에는 여러 가지 상상의 동물 문양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관음보살상은 현재 유리상자 속에 모셔져 있는데, 조선 세종 대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화려하고 정교한 꽃장식 화관을 쓴 자태가 아름답다.

오른손은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있으며, 왼손은 약간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댈 듯이 하여 손바닥을 위로 하고 있다. 옷깃은 양쪽 팔에 걸쳐 무릎으로 흘러 오른발 끝을 덮고 있다.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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