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 보다 중생구제” 大願本尊 모신 곳 |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후부터 미륵불 하생시까지의 무불(無佛)시대에 중생들을 대자비로써 교화하는 보살이다.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신 전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지장전보다 명부전(冥府殿)이라는 이름의 전각이 더 많다. 명부전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명부의 법정(法廷)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왕전으로도 불리는데, 이것은 선악의 심판관인 10대 제왕을 봉안한 전각임을 부각시킨 것이다. <사진설명 : 천안 광덕사 명부전 내부의 모습. 시왕과 동자, 장군 등의 모습이 보인다.> 드물게 업경전(業鏡殿), 또는 대원전(大願殿)이라고 쓴 편액도 볼 수 있는데, 업경전은 생전의 업보를 비춰보는 곳이라는 의미이고 대원전은 지장보살의 본원(本願)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지장신앙과 시왕신앙의 산실인 명부전은 칠성각, 산신각처럼 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전각이다. 일반적으로 명부전 내에는 대원본존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불.보살을 보필하고 지옥중생을 교화하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문관 차림의 무독귀왕(無毒鬼王)을 좌우 협시로 모시고, 그 좌우에 다섯 명씩 모두 열 명의 명부 시왕을 안치한다. 시왕상 앞에는 시왕을 시중드는 동자를 배치하며, 사자(使者), 녹사(錄事), 장군(將軍) 등의 상도 봉안한다. 또 대개의 경우 지장보살상 뒤에 지장탱화, 시왕상 뒤에는 시왕탱화를 봉안한다. 명부전의 주존인 지장보살은 보통 민머리에 석장을 짚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지장보살의 얼굴 모습과 자태에 관한 설명이 지장청(地藏請) 〈유치(由致)〉에 보인다. “만월 같은 얼굴, 맑은 강물 같은 눈, 마니 구슬을 손에 들어 원만한 과위를 보이고, 연꽃 송이에 앉으시어 자비의 광명을 두루 놓으시고, 항상 지혜로운 검을 휘두르사 저승길을 밝힌다”고 설명되어 있다. 〈지장보살본원경〉에서는, “그 형상은 천관(天冠)을 쓰고 가사를 입고 왼손에 연꽃을 들고 오른손으로 시무외인을 취하거나, 혹은 왼손에 연꽃을 잡고 오른손에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장보살의 경우 이 경에서 말한 것처럼 천관을 쓰고 있는 경우는 드물고 민머리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지옥 속으로 뛰어들어 극락 이끈 破사바 보살 민머리에 석장 짚는 형태로 시왕과 함께 봉안 명부전.시왕전.업경전.대원전 이라고도 불려 명부전 내에 도열해 앉아 있는 시왕은 ①진광왕(秦廣王) ②초강왕(初江王) ③송제왕(宋帝王) ④오관왕(五官王) ⑤염라왕(閻羅王) ⑥변성왕(變成王) ⑦태산왕(泰山王) ⑧평등왕(平等王) ⑨도시왕(都市王) ⑩오도전륜왕(五道轉輪王)이다. 보통 중앙에 지장삼존을 중심으로 왼쪽에 1.3.5.7.9왕, 오른쪽에 2.4.6.8.10왕을 배치한다. 형상은 엄숙한 얼굴에 공복을 입고 원유관을 쓰고 손에는 홀을 쥐고 있으나 제10대왕인 전륜왕만은 투구와 갑옷을 입은 장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왕에 대한 개념은 인도의 브라만교의 명부신앙이 불교 속으로 들어와 체계화된 후 중국 도교의 명부신앙과 결합되어 성립된 것으로, 당 말 오대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豫修十王生七經)〉이 편찬됨에 따라 하나의 완전한 신앙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한편, 동자는 시왕 사이사이에 1구씩 배열하기도 하고, 한 왕에 1구씩 배치하거나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1구씩만 놓기도 한다. 동자는 산신도 등 도교와 관련성이 강한 불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원래 도교의 신을 시중드는 시동으로 신의 권위와 신격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명부신앙에 관련된 경전에서 동자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 행한 선업과 악업을 기록해 두었다가 그 사람이 죽으면 명부를 판관과 대왕에게 갖다 바치는 선악동자(善惡童子)로 언급되고 있다. 동자상의 형태는 머리는 뿔 모양의 쌍상투이고, 두 손을 모아 시립(侍立)하거나 명부(名簿), 연꽃, 봉황, 복숭아 등의 지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한편, 사자는 염라대왕이 죽은 자의 집에 파견하는 전령으로 대부분 머리에는 익선관(翼善冠) 같은 것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두루마기나 칼, 창 등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명부전에서 흥미로운 물건은 업경대이다. 업경대는 명부전뿐만 아니라 대웅전과 같은 불전에도 비치되는 경우가 있다. 업경대는 전생에 지은 선과 복, 그리고 악과 죄업을 비춰보는 거울이다. 업경대에는 전생의 선악 행적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염라대왕을 비롯한 명부 시왕은 업경대에 비친 선악의 행적을 심사하고, 그 죄목의 경중에 따라 가야 할 지옥을 지정한다. 그래서 업경대는 권선징악과 자기반성의 상징물이 되기도 한다. 명부전은 한 마디로 명계(冥界)의 법정을 상징화 한 전각이다. 그래서 명부전에 들어가는 것은 재판이 열리고 있는 명계 법정에 참석한다는 의미가 있다. 대중들은 명계의 법정에 참석하여 지장보살께 기도하면서 선망 부모나 친척이 생전(生前)에 저지른 불충(不忠), 불효, 남을 속인 일, 자신의 이익만 도모하여 생명 있는 것을 도살한 것 등 온갖 악업이 소멸되어 이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이에 답하여 지장보살은 중생이 지옥으로 떨어져 여러 고초를 받는 것을 불쌍히 여겨, 지옥을 찾아가 육환장(六環杖)을 울려 지옥문을 열고 영수(靈水)를 뿌려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사진설명 : 양산 통도사 명부전 전경(통도사 사진).> 현존 명부전 건물은 다른 불전의 경우와 달리 국보.보물급 건물이 없다. 그러나 몇몇 건물들은 건축적, 장식적으로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것이 있다. 양산 통도사명부전, 서울 흥천사명부전(시도유형문화재 제67호), 하동 쌍계사명부전(시도유형문화재 제123호), 구미 수다사명부전(시도유형문화재 제139호), 진주 청곡사업경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9호) 등이 그 예에 속하는 건물들인데, 그 면모를 살펴보자. 먼저 통도사명부전은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사찰 중의 하나인 통도사의 부속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초창은 고려 공민왕 18년(1369)으로 알려져 있으나 중건.중수에 관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이후 조선 영조 36년(1760) 춘파대사가 개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종 24년(1887) 호성대사에 의해 중건된 명부전 내부에는 지장보살상과 그 주위에 염라대왕 등 시왕(十王)상이 모셔져 있다. 원래 시왕탱화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박물관으로 옮겨가 버려 현장에서는 볼 수 없다. 대중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법당답게 명부전 내외부 벽면에는 민화풍의 장식화가 가득차 있다. 정면 벽 위쪽에 봉황도가 있고, 왼쪽 벽에 별주부가 토끼를 등에 싣고 용궁을 향해 가는 별주부전의 한 장면과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벽에는 화려하지만 순정이 가득한 화조화가 펼쳐져 있다. 건물 외벽에는 〈삼국지〉의 중요 장면을 그린 민화가 공포벽에 장식되어 있다. 이들 그림은 명부전의 성격과 관련이 없는 내용을 그린 것이지만 조선말기 민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설명 : 서울 흥천사 명부전(문화재청 사진). 외벽의 장식그림들이 이채롭다.> 서울 흥천사명부전은 성북구 돈암동에 있다. 흥천사는 조선 태조 4년(1395)에 신덕왕후 강씨가 죽자 그 능을 정릉으로 옮겨 조성한 후 세운 사찰이다. 명부전은 철종 6년(1855) 순기스님이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집인 명부전 내부에는 시왕을 거느린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고, 그 뒷면 벽에 지장보살 탱화가 걸려 있다. 외벽에는 반야용선도, 기호신선도, 산수도, 보살도 등 다양한 내용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단순하면서도 소박하게 꾸며진 이 명부전은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하동 쌍계사명부전은 조선 숙종 13년(1687)에 성안대사가 짓고, 숙종 36년(1710)에 신민대사가 수리한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인 명부전 내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시왕을 모시고 있다. 그리고 구미 수다사명부전(시도유형문화재 제139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의 주심포 맞배지붕집이다. 법당 안에는 각원대사가 조성한 지장보살좌상을 비롯한 여러 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고 벽에 걸린 〈지옥도〉는 영조 42년(1771)이라는 제작 시기가 확실하고 상태가 거의 완벽한 귀중한 작품이다. 끝으로, 진주 청곡사업경전은 신라 헌강왕 5년(879) 도선국사가 창건한 청곡사의 부속건물이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것을 조선 선조, 광해군 연간에 중창하였으나 조선말 포우대사가 다시 대웅전을 비롯하여 사찰 부속건물들을 중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천정이 건물의 단순한 외관에 비해 화려한 것이 주목된다. 지장전은 사찰 건물 중에서 가장 많은 조상(彫像)과 탱화들이 봉안되어 있는 전각이다. 부처님을 모신 불전을 비롯하여 관음전과 같은 보살전에서는 주존과 협시 외에 다른 존상(尊像)들은 찾아 볼 수 없으나, 명부전의 경우는 많게는 40여 종류의 존상들이 봉안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명부전이 지장보살께 예배드리는 공간이라는 점과 함께 명부의 모습을 지상에 구현해 놓은 전각의 의미도 갖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허균 /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