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사찰순례

월명암[내변산 ; 전북 부안]

만사형통 33 2009. 3. 11. 16:38

1. 일자 : 2009년 3월 8일

2. 장소 : 월명암

3. 누구와 : 둘이서

4. 개 요 : 

 월명암은 변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쌍선봉(雙仙峰:498m)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월명암에 닿으면 변산의 군봉들이 발 아래에 와닿고 월명암 뒤 산정상에 있는 낙조대에 오르면 고군산군도의 뭍섬들이 지호지간으로 다가온다. 이 월명암에서 변산팔경의 두 가지를 볼 수 있다. 서해낙조(西海落照)와 월명무애(月明霧靄)가 바로 그것이다.

  하늘에 기대어 절간을 지었기에
  풍경소리 맑게 울려 하늘을 꿰뚫네
  나그네 마음도 도솔천에나 올라온 듯
  <황정경>을 읽고 나서 적송자를 뵈오리다.

  卜築蘭若倚半空
  一聲淸磬徹蒼穹
  客心 若登도率
  讀罷黃庭禮赤松

  매창이 지은 '월명암에 올라서(登月明庵)'라는 한시이다. 황정경은 송대의 시인 황정견(黃庭堅)의 시문집을 칭하는 말이며 적송자는 신선의 이름으로 신농 때의 우사(雨師)이다. 매창도 도솔천에 온 듯한 기분이었는데 이 절을 처음 세운 통일 신라 사람들도 이같은 느낌이었을까.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면 그곳에 서방정토가 있다 하였는데 통일 신라 시대의 고승들도 이곳에 와서 더 이상 서쪽으로 갈 생각을 접어두고 이 곳에 서천법계를 열었던 것이다. 이 절은 통일신라 신문왕 12년(692)에 부설거사(浮雪居師)가 창건하였다.
  월명암처럼 수난을 많이 겪은 절도 없을 것이다. 여러 차례 중수를 해오다 임진왜란 때에 불에 탄 것을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가 다시 중수하였다. 헌종 14년(1848)에는 성암화상(性庵和尙)이 대수축을 하여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한말 의병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왜병과 싸우다가 1908년에 다시 불타고 말았다. 이후 학명선사에 의해 1914년 다시 세워졌으나 1950년 6.25사변 직전 여순반란군이 이곳에 잠입하여 싸우던 중 또 다시 불타버리고 말았다. 그 후 1954년 원경(圓鏡) 스님이 군내 각 기관의 협조를 얻어 다시 지었고 1996년 중수를 하여 오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5. 사 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