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 2013년 3월 9일(토요일)
2. 장소 : 달성공원
3. 누구와 : 응서랑
4. 달성공원 안내도
1.정문 2.문화관 3,15, 19.공중전화 4.관풍루 5.사슴사 6.공작사 7.최제우상 8.맹금사 9.침팬지사
10.화장실 11.늑대사 12.물새장 13.시계탑 14.곰사 16.매점,휴게실 17.원앙이사 20.거위장
21.호랑이사 22.달성서씨유허비 24.이상화시비 25.코끼리사 26.원숭이사 27.어린이헌장비
28.사자사 29.잉어장 30.동물진료실 31.이상용구국기념비 32.꽃동산 33.테니스장 34.토성(산책로)
5. 사진
달성공원
대구는 신라때 달구화현(達句火縣)이라 불렀으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742∼765재위)때에 이르러 비로소 대구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달성의 옛이름은 이 달구화(達句火) 달불성 (達弗城)에서 유래된 것이다. 달성은 경주의 월성(月城)처럼 평지에 있는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축성한 것이 특징이다. 달성은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이래로 이 지방의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던 집단들이 그들의 생활근거지에 쌓은 성곽(城廓) 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벽의 아래층에는 조개무지 유적이 있고 목책(木柵)의 흔적도 있다.
따라서 달성은 우리나라 성곽발달사상 가장 이른시기에 나타난 형식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점해왕(沾解王) 15년(261)에 달벌성을 쌓고 나마극종(奈麻克宗)을 성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에 합병된 뒤에는 군사요지로 중시되었으며 그 후 고려 공양왕 2년(1390) 토성에 석축을 더했다. 조선조 선조29년 (1596)에 석축을 더하고 경상감영을 이곳에 둔 일이 있다. 성벽은 주로 흙으로 축조되었고 주위 길이는 약1,300m 높이는 4m 안팎이다.
관풍루-옛날 경상감영의 정문으로, 조선 선조 34년(1601)에 세웠다. 관풍루의 원래 이름은 ‘폐문루(閉門樓)’로 새벽 5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는 풍악을 울렸다고 한다. 이름을 바꾼 것은 감사가 이 건물 위에서 세속을 살핀다고 하여 붙인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이다. 건물 4면에는 난간을 설치했으며, 뒤편으로는 계단을 만들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2)달성토성
대구중심지에서 서쪽의 낮은 구릉지에 축성된 토성(土城) 내에 있다. 토성은 1963년 10월 사적 제62호로 지정되었으며, 공원은 1965년 2월 2일 조성되어 1969년 8월에 개장되었다. 공원면적은 0.13㎢이다. 달성은 대구의 옛 이름인 달구벌(達句伐) 또는 달구화(達句火)에서 유래되었으며, 삼국시대 말기에 축성되었다. 성벽 아래 토층에서 무문토기와 회흑색와질토기(灰黑色瓦質土器)가 발굴되어 기원전부터 이곳에 취락을 이룬 토착인이 있었고, 이들이 성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성의 형상은 말발굽처럼 돌려진 능선을 따라 바깥쪽에서 쉽게 올라오지 못하도록 높고 가파르게 쌓았으며, 성안은 약간의 기복은 있지만 대체로 넓은 평지로 되어 있다. 이 성곽은 고대부터 대구현의 관아로 사용되었다. 토성의 면적은 0.66㎢, 성벽길이 1.3km, 높이 5~12m이고, 동쪽에 성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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