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없는 중생의 아픔 끝없는 중생의 소원 얼마나 애달펐으면 천의 손이 되셨을까 얼마나 사랑하였기에 천의 눈을 하셨을까 출처 : <천수경> |
모든 중생의 마음 성품이 본래 깨끗함을 아는 것을 사랑(慈)이라 하고, 온갖 것은 평등하기가 허공 같다고 보는 것을 슬픔(悲)이라 하며, 온갖 기쁨을 끊는 것을 기쁜 마음(喜)이라 하고, 온갖 행을 멀리함을 버린 마음(捨)이라 하며, 모든 법은 미래 세상에는 깨끗하고 과거에는 갖가지며, 현재에는 '나'가 없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이러한 법을 진실로 관찰하여 분명히 안다면 이것을 보리심을 뚫는 것 이라 하나니, 보살이 이 모든 법을 관찰하고 나서는 차례로 온갖 법 자재로운 다라니를 얻느니라. 출처 : <대방등대집경> |
소원을 들어주는 보석(如意寶珠)보다 귀한 생명가진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위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려는 결심으로 내가 항상 그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언제나 내가 누구를 만나든 나를 가장 낮은 존재로 여기며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그들을 더 나은 자로 받들게 하소서. 나의 모든 행동을 스스로 살피게 하고 마음 속에 번뇌가 일어나는 그 순간에 그것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면 나는 당당히 맞서 그것을 물리치게 하소서. 그늘진 마음과 고통에 억눌린 버림받고 외로운 자들을 볼 때, 나는 마치 금은보화를 발견한 듯이 그들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누군가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나를 욕하고 비난하며 부당하게 대할 때 나는 스스로 패배를 떠맡으며 승리는 그들의 것이 되게 하소서. 내가 도움을 주었거나 큰 희망을 심어 주었던 자가 나에게 상처를 주어 마음을 아프게 하여도 여전히 그를 나의 귀한 친구로 여기게 하소서. 직접, 간접으로 나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은혜와 기쁨 베풀게 하시고 내가 또한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은밀히 짊어지게 하소서. 여덟 가지 세속적인 관심에 물들지 않아 모든 것이 때묻지 않게 하시고, 또한 이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깨달은 나는 집착을 떨쳐 버리고 모든 얽매임에서 자유롭게 하소서. 출처 : <달라이라마의 관용> |
대자비(大慈悲)를 갖는 일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는 단순한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대자비는 이기주의나 편협한 마음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계속 깨우친다......시기심과 다른 사람을 이기려는 욕망을 던져버려라. 대신 그들을 도와주려고 노력하라. 친절한 마음과 용기, 자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미소띤 얼굴로 그들을 환영하라.....솔직하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뿐 아니라 오른손도 모르게 할 때, 그때야말로 그 선함이 우리의 몸과 영혼에 완전히 녹아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달라이라마와의 대화> |
만일 비구가 사랑하는 마음(慈心)을 많이 닦아 익히면 큰 결과의 복된 이익을 얻을 것이다. 어떻게 비구가 사랑하는 마음을 닦아 익히면 큰 결과의 복된 이익을 얻는가 ? 그 비구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각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멀리 떠남과 욕심없음과 고요함에 의하여 열반으로 나아가며, 나아가서 버림의 깨달음 갈래를 닦으면, 멀리 떠남과 욕심없음과 고요함에 의하여 열반으로 나아가느니라. 출처 : <잡아함경> |
보살이 그 대비(大悲)한 마음을 닦는 것이 또 다함이 없나니, 마치 사람이 생명을 유지함에 있어서 숨쉬는 것으로 근본을 삼아야 하기 때문이며, 보살대사가 일체의 보시를 행함에 있어서도 이 대비(大悲)를 근본으로 삼아야만 그 보시가 대비와 함께 어울리는 것처럼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여섯바라밀이 다 대비를 근본삼아 서로 일곱가지 법품을 갖추기 마련이니, 왜냐하면 모든 보살행중에 대비가 가장 으뜸이기 때문에, 또 이 대비의 고요하고도 결함없는 지혜로서 일체 중생을 성취하기 때문에 보살의 대비가 바로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 출처 : <아차말보살경> |
무(無)도 죽고, 침묵도 죽고 무한자(無限者)마저도 죽지만 참으로 님[佛性]을 사랑하는 이는 죽는 걸 모른다. 그대가 침묵 속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무(無)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공(空)과 무(無)를 체험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떨어져 있는 존재다. '아는 자'가 아직도 떨어져 있다는 말이다. 아직까지 공(空)은 자각과 지각의 '대상'이다. 자신이 무(無)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놈은 누구인가 ? 이러한 경지를 체험한 놈은 누구인가 ? '나'가 '아는 자'가 아직도 떨어져 있다. 아직도 이중성이 남아 있다는 말이다. 이중성이 있는 한, 죽을 수 밖에 없다. 오직 사랑[慈悲]만이 죽지 않는다. 사랑 안에서는 먼저 '사랑하는 이'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진실한 사랑이 우러나온다. 자신도 신[佛性]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오직 사랑만이 존재하는 순간에 참된 사랑[慈悲]은 태어난다. 출처 : <오쇼 라즈니쉬 강의록> |
깨달음에 이르는 데는 오직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혜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비의 길입니다. 즉 하나는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지켜보면서 삶을 거듭거듭 개선하고 심화시켜 가는 명상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 지혜와 자비의 길을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지녀온 불성과 영성의 씨앗이 맑고 향기롭게 꽃피어납니다. 본래 청정한 우리 마음을 명상과 나눔으로 밝혀야 합니다. 출처 : <산에는 꽃이 피네 : 법정스님> |
두 소매를 흔들며........... (인간을 묶어 세우는 번뇌와 탐욕으로부터 벗어남의 형상화) 다리를 세 번 들었다놓았다........... (三界-욕계,색계,무색계-로 부터 벗어남의 형상화) 자라처럼 몸을 움추리고................................. (뭇 중생들의 삶들을 따른다는 몸짓) 곱사처럼 등을 구부리며 춤을 추네....................... (모든 것을 다 거둬들인다는 의미) (원효스님의 무애무(無碍舞) 모습을 그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