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부처님이 보낸 엽서

생명

만사형통 33 2007. 7. 10. 14:02

천지우주가 오직 하나의 실상이요,
하나의 생명입니다.

우리 인간의 본래 생명이 부처이기 때문에
우리 생명 자체도 광명으로 충만해 있고,
천지우주도 바로 빛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내 생명과 우주의 생명은 둘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래 성품이 바로 불성(佛性)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든간에 꼭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출처 : <청화스님>

진여(眞如) 또는 진리란 우주의 생명 그대로의 여실하고 참다운 이치를 말합니다.

우주의 참다운 생명인 진여는 그냥 보통 이치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동하는 생명이기 때문에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도 합니다.

진여불성이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봐서 한도 끝도 없이 유구한 생명체이고,
거기에 들어 있는 공덕으로 봐서는 만공덕(萬功德)의 자리입니다.
그런 공덕이 들어 있는 자리, 자비로운 기운, 지혜로운 기운,
모두를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그런 공덕이 들어 있는 자리가 진여불성 자리입니다.

진여불성, 이것은 바로 우주의 생명이고
모든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세한 것 속에도 다 들어 있습니다.


출처 : <청화스님>

모든 법은 목숨으로 근본을 삼고 사람은 다 제 목숨을 보호한다. 그러므로 살생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목숨을 주는 것이요, 목숨을 주는 것은 모든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의
보시란 이른바 목숨을 주는 것이니,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천상에 나는 인(因)이 되는 것이다.

훌륭한 계율이란 이른바 목숨을 주는 것이다.......

출처 : <정법념처경>

살생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업(業)이요, 또 바른 법의 종자로서, 생사에 헤맬 때에는 오직 살생
하지 않는 것이 귀의할 곳이 되고 구원이 되는 것이며, 생사의 어두움 속에 들어가서는 이 살생
하지 않은 것이 등불이 된다. 살생하지 않는 것은 바로 자비이다. 바른 생각으로
살생하지 않는 선을 생각하면 그 마음에는 항상 기쁨이 생긴다. 만일 남의 살생을 말릴 때
남이 그것을 거절하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살생하지 않는 것이다....

출처 : <정법념처경>

참생명인 참사람으로 나아갑시다.

하루밤 꿈같은 인간의 삶이 아닌
참으로 불법에 귀의한 불교적 생명,
즉 참생명으로 살아갑시다.

참사람은 종교와 철학마저도 초월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도 초월하여 어디든지 걸리지않고
저 구경(究竟)의 자리마저 초월하여 자유자재합니다.

본래 인간의 참모습은
생사도 없고 청정하고 아무것도 없는데서
일체를 창조하며 자유자재합니다.

출처 : <서옹스님>

"세존이시여, 원하옵나니 우바새의 오계를 듣고자 하오며, 바른 계율을 헐고 범하면 어떠한
나쁜 일이 있나이까 ?"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난디 우바새야, 생명을 해치면 열가지 나쁜 일이 있느니라. 열가지 나쁜 일이란 지금 세상
에서는 항상 해하려는 마음을 품고, 뒷세상에서는 독한 마음이 왕성하여 고통과 해독을 늘
입고 원망이 쉬지 않는다. 남들이 기쁘게 보지 아니하고, 나쁜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보는
이가 두려워하며, 잠자리가 편안하지 않는다. 꿈을 꾸면 두렵고 꿈을 깨면 놀라서 두근거리며,
죽을 때에는 갑자기 미쳐서 단명의 묘종을 심고, 몸이 무너져 목숨을 마치면 지옥 안에 가서 나며,
설령 사람이 되더라도 병이 많고 목숨이 짧은 것이니, 이것이 열가지 나쁜 일이 되느니라."

출처 : <불설출가연경>

"모든 중생은 불성을 다 가지고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 "

불교에서 일체 중생을 말할 때는, 인간만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이나
두두물물 산하대지, 우주공간에 떠 있는 온갖 물체 등 그 어떠한 것도 일체 중생의 범주에
들어가며, 불성이란 것은 물질이 아니고 하나의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따라서 모든
존재가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우주란 것은 하나의 생명입니다.
달의 생명과 또는 해의 생명, 또 모든 중생의 생명과 내 생명은
분할된 것이 아니고 모두 연결되어 있는 오직 하나인 것입니다.

출처 : <청화스님 어록>

부처님께서는 "연기(緣起)를 보면 법을 보고 법을 보면 여래를 본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과 저것, 나와 너, 지구와 우주가 서로 의존하면서 무아(無我)로 존재한다는 것이 연기법입니다.
연기의 도리가 펼쳐지는 자리는 모든 존재가 무(無)로 비워지는 자리입니다.

연기세계의 참 모습은 나다/너다, 있다/없다, 좋다/싫다 같은 상대적인 세계와
모든 이것과 저것을 동시에 떠나 있기에 중도(中道)라고도 합니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핵심은 바로 이 '중도연기中道緣起'입니다.

모든 존재의 바탕이 연기법이라는 사실에 명확히 눈 뜨게 되면
동체자비(同體慈悲)의 실천행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연기적 깨침이란,
'나'와 '남'을 가르는 울타리가 무너지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조계종 수행의 길 간화선>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꽃이 있습니다.
다 꽃씨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 성인이 말했듯이,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 꽃을 피워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씨앗이 움트기 위해서는
흙속에 묻혀서 참고 견디어 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꽃들은 자기 자신과 남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최선을 다해 피어날 뿐 어느 꽃에게도 비교하지 않습니다.
비교는 시샘과 열등감을 낳습니다.

비교하지 않고 자신답게 자신의 삶에 충실할 때
그는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법정스님>

"보살마하살이 응당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되나니,

이른바 세상에 있는 온갖 중생(衆生)인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과
유색(有色), 무색(無色), 유상(有想), 무상(無想),
비유상(非有想), 비무상(非無想)을
내가 모두 제도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도록 하리라 하라."

출처 : <금강반야바라밀경>

'불교관련 > 부처님이 보낸 엽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07.07.10
윤회  (0) 2007.07.10
  (0) 2007.07.10
자비  (0) 2007.07.10
마음  (0) 2007.07.10